제2시집 [시간여행] 70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림일기책을 사주셨다. 난 그때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림일기를 썼다. 사물을 보고 느끼는 것들을 손바닥만 한 일기책에 그림으로 기록을 했다. 언젠가 야외에서 미술수업을 할 때였다. 하늘에 파랑색을 칠하려고 크레파스 통을 다 뒤졌는데도 파랑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빨강색을 하늘에 칠했다. 며칠 후 내가 그린 『여름』이라는 그 그림이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되어 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은 파란하늘을 빨갛게 칠한 것을 보고 미술 실력이 대단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사실은 파랑색이 없어서 빨간색을 칠한 것인데. 우리는 수많은 느낌 속에서 살고 있다. 가을하늘을 보면 적막하다는 느낌, 빈 들판을 보면 공허하다는 느낌, 바람 냄새를 ..

부끄러움의 미학과 시적 승화를 통한 두 개의 공간 / 양수창 시인

이재봉 시인은 필자에게 다정한 이웃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재봉 시인과 남단의 진해에 사는 필자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둘은 언제나 가까운 이웃이요, 늘 정이 오가는 이웃이며, 사이좋은 이웃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시인나라]에서 약 7년 전에 만났는데 그동안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직접 만나 지금까지 시에 대하여 교감하면서 절친하게 지내오고 있다. 이재봉시인은 매우 겸손한 시인이다. 그는 마치 연금술사처럼 언어를 절제하면서 서정의 세계를 아름다운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시킬 수 있는 시를 창작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자만하지 않고 먼저 자신을 돌아볼 줄 알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줄 아는 시인이다. 그는 아버지 고 이정호 시인에 ..

사랑의 원근법

사랑의 원근법 / 이재봉 해가 지면 그 여자가 숨 쉬는 하얀 방으로 돌아옵니다 저녁을 먹고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듭니다 그 여자가 잠이 든 동안 나는 열린 창틈으로 벽 바깥쪽을 바라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똥별이 아파트 옥상 피뢰침에 다닥다닥 붙어서 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별똥별이 피뢰침을 타고 내려와 내 몸 구석구석에 열꽃을 피웁니다 셀리, 셀리 제발 그 별꽃으로 이어 만든 동아줄로 나를 묶어 당신의 나라 파랗고 둥근 머언 나라로 나를 데려 가 주세요 늘 함께 있어도 외로운 이 하얗고 네모난 방 오늘 밤 나는 그리움으로 가슴이 타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