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꽃다발 / 이재봉 결혼기념일 날 아내에게 사랑해! 하고 꽃다발을 주었더니 기뻐하며 덥석 받다가 손에 가시가 박혔다 아름다운 꽃다발 뒤편에 저렇게 무수한 가시가 박혀 있는 줄 몰랐다 내 사랑도 아내에겐 더러 가시였을 것이다 제3시집 [난쟁이별]/사랑은어떻게 2016.07.07
못 못 / 이재봉 위층에서 쿵쿵 못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잠을 자던 아내가 깜짝 놀라 깬다 놀라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그녀의 가슴에 못 자국이 많다는 걸 알았다 항상 그러했다 공연히 퉁퉁거리기만 했지 다정스럽게 말할 줄은 몰랐다 대못만 박는 내 화법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벽에 박힌 못이야 얼른 뽑을 수 있지만 가슴에 박힌 못은 평생 욱신거린다 제3시집 [난쟁이별]/사랑은어떻게 2016.07.07
피타고라스 선생에게 피타고라스 선생에게 / 이재봉 마릴린 먼로가 아름다운 것은 한쪽 얼굴에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달이 아름다운 것은 한쪽 면이 일그러졌기 때문입니다 지구와 달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은 물질과 반물질이 서로 불균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점이 있는 먼로가 아름다운 것도 일그러진 달이 아름다운 것도 불균형하기 때문입니다 제3시집 [난쟁이별]/사랑은어떻게 2016.07.03
성경책 읽는 아내 성경책 읽는 아내 / 이재봉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깨니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속에서 성경책 읽는 소리가 난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소리 간간이 축복을 달라는 소리 아내의 마음 속에는 창고가 있다 넓고 오래된 창고 안에는 일용할 양식이 가득 쌓여 있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성경책을 읽는 아내 오늘도 텅 빈 내 마음에 일용할 양식을 놓고 간다 제3시집 [난쟁이별]/사랑은어떻게 2016.03.01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아름다운 것은 / 이재봉 꽃이 아름다운 것은 언젠가는 지기 때문이다 사랑이 소중한 것은 언젠가는 헤어지기 때문이다 당신이 내 안에 꽃으로 피어나 어느 날 아침 사라진 것처럼 가장 좋고 눈부신 한때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것이 짧든 길든 제3시집 [난쟁이별]/사랑은어떻게 2016.03.01
상사화에게 상사화에게 / 이재봉 슬퍼하지 마라 네 곁에 없다고 없는 게 아니다 네가 피기도 전에 떨어진 잎새들이 산그늘에 숨어서 너를 보고 있다 새가 되어 이골 저골 날기도 하고 나비가 되어 춤을 추기도 한다 가끔은 너를 보며 눈물도 흘린다 네 곁에 없다고 슬퍼하지 마라 네가 진실로 그리워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 제3시집 [난쟁이별]/사랑은어떻게 2016.03.01
상처 상처 / 이재봉 산길을 오르다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꽃잎만한 상처가 정강이에 빨갛게 묻었다 상처를 붕대로 동여 맺더니 누르스름한 진물과 함께 비릿한 냄새가 나왔다 붕대를 풀자 진물이 멎으면서 무른 상처가 고들고들해졌다 상처를 감추지 않고 속내를 내보이는 나무가 더 강하고 싱싱하듯 동여 맨 상처를 풀자 살굿빛 새살이 돋아났다 제3시집 [난쟁이별]/사랑은어떻게 2016.02.01
첫 눈 첫 눈 / 이재봉 바로 너였구나 밤새 사각거리며 잠 못 이루게 한 사람이 내 귓전에서 밤새 울고 가던 사람이 바로 너였구나 아직 눈길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저렇게 눈물만 남기고 떠나갈 것은 무엇인가 까치 한 마리 눈물로 목을 적시고 푸드덕 날아간다 제3시집 [난쟁이별]/사랑은어떻게 2016.01.11
가장 아름다운 빛 가장 아름다운 빛 / 이재봉 빨간 색유리를 통해서 빛의 세계를 본다 뜨락에 피어 있는 하얀 국화가 빨간 장미로 보이고 그 옆의 노란 분꽃이 빨간 백일홍으로 보인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빛의 세계를 본다 모든 것이 색유리에 붙잡혀 빨갛게 보이는데 저 멀리 강가에서 푸르스름한 불빛이 색유리를 뚫고 들어온다 물에 빠진 자식을 구하고 대신 죽은 어머니의 혼 불이 제3시집 [난쟁이별]/사랑은어떻게 2015.05.01
부처 부처 / 이재봉 점심 공양을 마치고 일주문을 나서는데 식당 앞 노점에서 할머니가 산나물을 팔고 있다 쪼그리고 앉아 흥정을 하는데 어린 손자가 할머니 등 뒤에서 꽃을 들고 방긋이 웃는다 제3시집 [난쟁이별]/사랑은어떻게 201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