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 [시간여행]/봄여행 18

진달래꽃

진달래꽃 / 이재봉 비 오는 봄날 노래방에 갔습니다 4.4조로 내리는 봄비에 맞춰 소월의 진달래꽃을 부르는데 한 여자가 화면 속에서 걸어 나와 탬버린을 흔듭니다 경쾌한 7.5조의 율동 느린 내 노래로는 그 여자의 율동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 여자가 진달래꽃을 흩뿌리며 화면 속으로 사라집니다 언제나 반박자 느린 내 사랑법 머리 위에 꽃비가 또 하염없이 내립니다

그날

그날 / 이재봉 키 큰 은사시나무 사이로 바람이 공작 날개를 펴며 지나가고 오월의 햇살은 가장귀에서 푸르게 돋아났다 오후 세 시, 어머니 전화를 받고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희미하게 누워있었다 뚜우 소리를 내며 심전도가 멎자 눈꼬리에 매달려 있던 눈동자가 뚝 떨어졌다 순간 모든 전원이 꺼지면서 땅이 무너지고 나무가 쓰러졌다 한 참을 울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울다가 그만 산이 되어 산처럼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