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 [사랑풍경] 19

나는 별을 통해서 시를 쓴다

나의 작업실은 책과 그림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방이다. 동쪽으로 파란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이 기다랗게 나 있고 북쪽 벽에는 르네 마가레트의 이 걸려 있다. 책상 위엔 칼 융의 과 스티븐 호킹의 그리고 줄리앙 슈나벨의 신표현주의 그림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다. 밤만 되면 나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수많은 별을 담은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138억 년 우주가 처음 탄생할 때 나온 태초의 빛은 어떤 색깔일까. 단 몇 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현대 도시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탈출할 수 있는 곳은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다. 그 곳은 마치 거대한 거울처럼 내가 체험한 내용 가운데 잊어버린 것들, 현실세계의 도덕관이나 가치관 때문에 현실에 어울리지 못하고 억압된 것들, 그리고 고의로 눌러 버린 감정들이..

사랑 또는 의식의 二分法 / 김대규 시인

1. 별과 시인의 탄생 시인의 탄생, 그것은 광대무변한 영혼의 은하수에 새로운 별자라가 생겨나는 일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인을 맞이한다는 것은, 그 별자리에 命名을 하고, 그 새로운 세계와 교신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이재봉시인의 원고를 전해 받았을 때, 나는 사람보다 작품과 먼저 만난다는 문학적 인연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고, 평소 신인이니, 데뷔니, 유파니 경향이니, 어디 출신이니, 누구 추천이니 하는 한국문단의 폐습적 관행들을 오물시해 온 스스로의 소신에 하나의 증인처럼 나타난 그의 작품들이 거느리고 있는 개성적인 시세계는, 그가 공식적인 명명을 받기 훨씬 전부터 예술의 성좌에서 이미 운행을 계속해 온 밝은 빛의 별이었음을 확신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재봉시인은 유독 별에 대해 큰 관심을 ..

할아버지

할아버지 / 이재봉 골짜기 은수원 나무숲 사이로 살구나무가 보였다 살구가 먹고 싶었다 하늘로 치솟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몰래 살구를 땄다 할아버지가 긴 작대기를 들고 쫓아온다 황급 히 나무에서 내려와 도망갔다 시게를 보니 금요일 오후 두 시다 세 시에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한 로제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있는 힘을 다해 뛰었지만 제자리에서 맴 돌았다 몸이 종이처럼 가벼워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