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던 날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파란 줄무늬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앞줄에 오종종 앉아 있다. 끈이 풀린 신발을 신고 있던 한 학생이 비스듬히 앉아 옆 친구의 핸드폰을 훔쳐보면서 낄낄거린다, 다음 역에서 여학생 서넛이 올라타자 뒤꿈치를 구부려 신고 있던 학생이 두두룩한 여학생의 엉덩이를 곁눈으로 훔쳐본다, 지하철이 철교를 지나며 흔들거리자 신발 하나가 해진 앞꿈치 사이로 하얗게 웃고 있다. 순간 신발 속에 감춰졌던 내 모습이 희끗희끗 지나간다. 벨기에의 저명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신발인지 맨발인지 알 수 없는 「붉은 모델(Le Modèle Rouge)」 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왜 맨발의 모양을 하고 있는 기이한 신발을 그렸을까? 그 신발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아마도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