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잠 / 이재봉 산들산들 잠이 들었다 바람을 타고 하늘에 오르자 커다란 성문이 보였다 나는 성 안으로 들어가 광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주위가 시끌벅적했다 이마가 툭 튀어나온 소크라테스가 죽어서 호메로스를 만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죽고 싶다며 사람들 앞에서 열변을 토했다 낯선 사람들이 서성서성 광장을 거닐고 있었다 나는 광장을 빠져나와 연옥의 불을 저장한 산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낯익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흰 당나귀를 타고 나타샤를 찾아 헤매는 백석의 얼굴도 보였다 가파른 비탈길을 지나 사방으로 뻗은 길이 한눈에 들어 오는 순간 건장한 사내가 길을 막아섰다 안개가 걷히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연옥빛 햇살을 받으며 다시 하늘로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