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시집 [지구의 아침] 78

쑥개떡

쑥개떡 / 이재봉 치매 걸린 아비가 구부정히 누워있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야 퇴원할 수 있다며 자식들이 계속해서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배가 고프다며 엉뚱한 밥 타령만 한다 아비는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처럼 맥연히 일어나 연거푸 물을 마시고는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서성거린다 배고픈가 싶어 낮에 할머니가 가져온 쑥개떡을 꺼내놓자 말라 퍼석해진 등을 일으켜 세우고 어머니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인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쑥개떡 냄새가 흩어졌던 기억의 파편을 불러냈는지 눈시울에 파릇한 이슬이 맺혀있다

아버지

아버지 / 이재봉 아버지, 오늘 태릉 배밭길을 걸었습니다 삼십여 년 전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을 오늘은 막내와 같이 걸었습니다 길섶에는 봄비를 머금은 민들레 씀바귀가 함초롬히 돋아나 있고 버즘나무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마른 잎을 흔들었습니다 아직 배꽃은 피지 않았지만 배나무 그늘에 앉아 막내와 아버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십대에 대학생 아들을 뒀던 아버지, 저를 보면 쑥스러워 애먼 말씀만 하셨지요 참으로 부끄러움이 많으셨던 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된 저나, 아버지가 된 막내도 아버지처럼 부끄러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절반은 이미 아버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