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시집 [지구의 아침]/소나기

아버지

jaybelee 2020. 4. 5. 11:07

                  

 

아버지 / 이재봉

 

아버지, 오늘 태릉 배밭길을 걸었습니다

삼십여 년 전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을

오늘은 막내와 같이 걸었습니다

길섶에는 봄비를 머금은 민들레 씀바귀가

함초롬히 돋아나 있고

버즘나무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마른 잎을 흔들었습니다

아직 배꽃은 피지 않았지만 배나무 그늘에 앉아

막내와 아버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십대에 대학생 아들을 뒀던 아버지,

저를 보면 쑥스러워 애먼 말씀만 하셨지요

참으로 부끄러움이 많으셨던 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된 저나, 아버지가 된 막내도

아버지처럼 부끄러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절반은 이미 아버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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