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크롬 화상 / 이재봉
그 해 유월 흥철네 아버지는 돼지꿈을 꾸었다
꿈길에서 만난 시커먼 돼지를 따라 기와집골 감자밭으로
갔다 찢어진 밭두렁에서 주둥이가 떨어져 나간 화병을 발
견했다 이장에게 보였더니 백제 후기 것으로 추정된다면
서 횡재했다고 부러워했다 다음 날로 그는 팔자를 고치기
시작했다 쇠꼴배미 두마지기로 여자를 사고 천수답 백 평
으로 술을 마시고 마지막 남은 텃밭을 노름판에 던졌다 마
누라 자식들이 사흘 동안 물만 마시다 얼굴에 부황기가 가
득할 때 화병을 들고 서울로 향했다 인사동 골동품 거리를
헤매다 화병을 탑골공원에 던져버렸다
그 해 시월 가을비가 쏟아지던 날
기와집골 감자밭에는 한 주검이 누워 있었다
마시다 남은 농약병이 함께 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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