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 이재봉
내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는
손때가 오른 만년필이 꽂혀있다
아버지가 중학교 입학 선물로 주신 만년필
무딘 펜촉을 꾹꾹 누르며 글을 쓰면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뒷동산에 올라 ‘메기의 추억’을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십 년 동안 왼쪽 가슴에 꽂혀
심장을 뛰게 했던 검정 만년필
이제는 닳아 없어질 물건이 아니라
내 삶의 반려가 되었다
오늘도 나는 녹슨 촉을 삭삭거리며
아직 끝내지 못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