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우상 / 이재봉
한때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내가 미학에 심취해 있을 때 그의 시는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주었고
내가 사회 정의를 입으로만 떠들어댔을 때
그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그도 사람이라는 걸
외로울 땐 술 한 잔 마시며
욕망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이제 그는 갔다
내게 절망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그는 떠났지만 나는 알고 있다
좌절하고 실망한 마음은
또 다른 우상을 찾아 나설 것이라는 걸
우상을 간절히 원하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라는 것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