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시집 [익명의 시선]/익명의 시선

jaybelee 2020. 11. 7. 11:07

 

 

옷 / 이재봉

 

옷이 나를 입고 외출을 한다

옷은 길거리 사람들을 스캔하며

쇼핑몰에 들어가 새 옷을 산다

옷은 타인에게 비쳐질 모습을 의식하며

안심시켜 줄 순간을 찾는다

 

어떤 사람에게 옷은 육체의 피난처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욕망의 승화이다

그들에게 옷은 신분의 상징물이며

자기 존재의 증명서이다

옷은 날마다 차림새를 바꾸어가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

 

옷이 나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옷은 다시 옷장을 뒤지며

내일 입을 옷을 찾고 있는데

이젠 드라이클리닝도 먹지 않는

낡은 양복 한 벌이 구석에 걸려있다

첫 시집을 내던 날 입었던 그 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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