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 이재봉
문이 열리고
사제가 십자가를 들고 나타나자
길 잃지 않은 아흔 일곱은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하여
손가락 열 개를 뾰족이 세우고
십자가 가까이 모여든다
길 잃은 셋은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맨 뒤에 앉아
이 곤궁한 하루를 벗어나게 해달라며
황공한 듯 두 손을 모은다
미사가 끝나고
사제가 옆문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길 잃은 셋은 끝내
십자가를 보지 못하고
첨탑 위의 빈 하늘만 쳐다본다
십자가는 너무 멀리 있다
십자가는 너무 높이 있다
길 잃은 셋이 찾아 가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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