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 이재봉
키 큰 은사시나무 사이로
바람이 공작 날개를 펴며 지나가고
오월의 햇살은 가장귀에서 푸르게 돋아났다
오후 세 시, 어머니 전화를 받고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희미하게 누워있었다
뚜우 소리를 내며 심전도가 멎자
눈꼬리에 매달려 있던 눈동자가 뚝 떨어졌다
순간 모든 전원이 꺼지면서
땅이 무너지고 나무가 쓰러졌다
한 참을 울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울다가 그만 산이 되어
산처럼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