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떠나던 날 / 이재봉
아침부터 짐을 꾸렸다
기내에서 읽을 시집 몇 권과
새로 나온 소설책을 가방에 넣고 있는데
아내가 그곳은 추운 곳이라며
두꺼운 외투와 스웨터 두 벌을 간동간동 쌌다
그러면서 입맛이 없을 때
잘 챙겨 먹으라며 볶은고추장과 컵라면을
자잘한 짐 사이로 쑤셔 넣었다
정오가 될 때까지 짐 꾸리기는 계속되었다
결국 가방의 지퍼가 터져
그 안에 있던 짐이 다 쏟아지고 나서야
짐 꾸리기는 멈춰 섰다
나는 가방을 버린 채 빈 몸으로 집을 나섰다
몇 개의 기억만 가슴에 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