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시집 [지구의 아침]/랜선 여행

우산

jaybelee 2022. 3. 1. 03:01

 

우산 / 이재봉

 

겨울이 끝나자 비가 내렸다

 

비를 보는 건 좋지만 맞는 건 싫어 어머니는 마루에 앉아 중얼거리다

말고 빗발이 내리치는 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젖은 가죽나무 사이로

파란 양철 대문이 열리고 학교에 갔던 손녀가 비를 맞으며  들어왔다

어머니는 황급히 뛰어나가 손녀에게 우산을 씌워 주고는 곧바로 우산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애비가 오늘도 이걸 두고 갔네 비에 젖어

몸이라도 상하면 어떡하지

 

늦은 오후 사무실을 나서는데 낯익은 우산 하나가 문 앞에 놓여있다

잘 됐다 싶어 그걸 펼쳐들고 집으로 가는데 빗줄기 사이로 익숙한 목

소리가 들린다 애비야 우산 꼭 챙겨라 비 맞지 말고

 

가슴에 묻어 둔 그리움이 왈칵 목젖까지 올라오는 밤

뮈토스의 강을 건너온 어머니의 목소리가

 

머리 위로 또 하염없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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