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시집 [지구의 아침]/랜선 여행

밥풀

jaybelee 2023. 1. 21. 01:21

 

 

밥풀 / 이재봉

 

아내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내 얼굴에 밥풀이 묻었다며

슬그머니 밥풀을 떼어낸다

나는 내 얼굴인데도 스스로 볼 수 없는데

아내의 얼굴은 속속들이 다 보인다

두 볼에 부얼부얼 일어난 솜털도

까만 풀씨가 날아와 콧등에 박힌 것도

머릿속에 가려진 티끌까지도 다 보이는데

정작 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내 얼굴인데도 상대가 없이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나는 내 안에 있지 않고

상대의 눈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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