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시집 [지구의 아침]/푸른 별 17

별밤

별밤 / 이재봉 그동안 나는 밤만 되면 별을 셌다 영어시간에 star는 가산명사라고 배웠으므로 은빛 강물 위를 날아가는 백조를 따라 가뭇없이 사라지는 별들을 세고 또 셌다 비록 심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더 이상 별을 셀 수 없다며 연락을 끊었지만 오늘도 나는 잠을 설친 채 창가에 기대어 남쪽 하늘을 바라본다 싸라기를 뿌려 놓은 듯 수많은 잔별 사이로 커다란 창문이 걸려있다 페가수스가 만든 사각형이다 나는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다시 별을 센다

토끼는 어디로 갔을까

토끼는 어디로 갔을까 / 이재봉 달나라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할머니는 늘 내게 말했다 하지만 암스트롱이 달에 갔지만 절구는커녕 돌멩이 몇 개만 들고 왔다 옥토끼2호가 뒤편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그림자만 밟고 돌아왔다 그래도 어딘가에 토끼가 있을 거야 할머니는 내게 다시 말하면서 먼데 별을 가리킨다

화성

화성 / 이재봉 화성에 땅을 샀다고 아내에게 말하자 삼년 새 두 배가 오른 곳이라며 뛸 듯이 기뻐한다 암스트롱이 달을 다녀왔고 큐리오시티가 화성 곳곳을 누비고 있는데도 아직 투기꾼들이 하늘까지 손대지 않았다 오늘도 밤하늘의 화성을 바라보며 아르카디아 평원에 있는 내 땅을 본다 언젠가 그곳에 내 집을 지을 것이다 아직은 뒷거래 하지 않는 그곳에

중복

중복 / 이재봉 친구들과 동구 밖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데 해 저문 하늘에 붉은 별이 떠올랐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혼불(魂)이라며 사람이 죽으면 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공연히 오싹하며 혼불을 바라보고 있는데 건너편 밭두렁에서 어른들이 화톳불에 개를 그슬리고 있었습니다 벌겋게 타오르는 불기운이 내 머리에도 번져 오글오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