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 [시간여행]/봄여행 18

하이드파크

하이드파크 / 이재봉 마블아치 아래서 회색빛 터키인이 기타를 치고 있다 지나가던 관광객이 가슴을 불쑥 내밀고 동전을 던진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라일락 꽃길을 걸으며 잔디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은빛 머리의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은발의 소녀와 흑발의 소년이 봄 햇살이 하얗게 뿌려진 켄트지 속에서 입을 맞추고 있다 그 옆에서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비둘기 한 쌍이 그림 속으로 날아 들어가 구구구 노래를 한다

오랑캐꽃

오랑캐꽃 / 이재봉 오랑캐가 쳐들어온다 선전포고도 없이 앞 산골짜기를 침공하기 시작한다 대장 인 왕오랑캐가 돌격 명령을 내리며 노란 신호탄을 발사 하 자 뒤따르던 서울오랑캐 남산오랑캐 태백오랑캐 장백오랑 캐 갑산오랑캐 간도오랑캐 광릉오랑캐 금강오랑캐 졸방오 랑캐 투구오랑캐 각시오랑캐 노랑오랑캐 자주색오랑캐 얼 룩오랑캐 흰오랑캐 삼색오랑캐 민둥오랑캐 고깔오랑캐 단 풍오랑캐 둥근털오랑캐 잔털오랑캐 졸병들이 일제히 함성 을 지르며 형형색색의 수류탄을 던진다 오랑캐꽃들의 난장질에 산골짜기는 신음 소리 한 번 못 내 고 점령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