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시집 [익명의 시선]/슬픔이 슬픔을

나팔꽃

jaybelee 2022. 9. 21. 20:01

 

 

나팔꽃 / 이재봉

 

나팔꽃이 없어졌어요

화분에 물을 주고 있던 아내가

아침에 피었던 나팔꽃이 없어졌다며

한참을 찾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초가을 한낮

나팔꽃은 오후 내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밤새워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꽃 하나가 벽을 타고 올라오다

사들사들 시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나팔처럼

입술을 길쭉이 내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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