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시집 [지구의 아침]/소나기

홍시

jaybelee 2020. 11. 1. 11:01

 

홍시 / 이재봉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낯선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직박구리들이

나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저녁 내내 골목을 누볐지만

어디에도 옛집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황량한 마을

나무 사이로 적막은 흐르는데

어둠 속에 봉긋 솟은 홍시 하나가

등불처럼 나를 밝혀준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별도 없는데

마당 한 구석에 동그마니 서서

불빛 없는 집에 등불이 되어 준 홍시

주인이 버리고 간 빈집을

혼자서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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