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belee
2021. 4. 21. 04:21
휴지통 / 이재봉
문서를 작성하다가 파일을 날려 보냈다
파일을 복원하려고 휴지통을 열자
수백 개의 폴더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하나하나 폴더를 검색하다 너무 엄청나서
그만 찾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내 머릿속도 컴퓨터의 휴지통을 닮았다
추억에 갇혀 버리지 못한 기억의 파편들이
밤만 되면 나타나 잠을 못 이루게 한다
파란 대문으로 여자 아이가 걸어 나오고
꽃이 가득한 치마를 입고 어머니가 걸어 나오고
꼿꼿한 할아버지가 장대를 들고 걸어 나온다
기억 위에 기억을 쌓다보면
어느새 생각은 뒤죽박죽 헝클어져 있다
기억을 비우지 못한 내 마음은
항상 복잡하고 산란하다
기억을 흘려보내야 또 다른 기억이 쌓이듯
휴지통은 비어있어야 휴지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