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 [사랑풍경]/작품 해설

사랑 또는 의식의 二分法 / 김대규 시인

jaybelee 2005. 1. 27. 11:01

1. 별과 시인의 탄생

 

시인의 탄생, 그것은 광대무변한 영혼의 은하수에 새로운 별자라가 생겨나는 일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인을 맞이한다는 것은, 그 별자리에 命名을 하고, 그 새로운 세계와 교신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이재봉시인의 원고를 전해 받았을 때, 나는 사람보다 작품과 먼저 만난다는 문학적 인연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고, 평소 신인이니, 데뷔니, 유파니 경향이니, 어디 출신이니, 누구 추천이니 하는 한국문단의 폐습적 관행들을 오물시해 온 스스로의 소신에 하나의 증인처럼 나타난 그의 작품들이 거느리고 있는 개성적인 시세계는, 그가 공식적인 명명을 받기 훨씬 전부터 예술의 성좌에서 이미 운행을 계속해 온 밝은 빛의 별이었음을 확신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재봉시인은 유독 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인다. 그것은 기계화, 물질화된 현실로부터의 탈출이기도 하지만, 이 우주의 모든 신비를 암호처럼 반짝이는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본질적인 호기심일 것이다. “나는 별을 통해서 시를 쓰고 그리고 그 시를 통해서 자기원형(自己原型)을 추구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 그가 추구한 ‘자기원형’은 어떤 모습들일까. 전체 5장, 총 44편의 작품들에서 나는 다음 몇 가지의 시적 특징들을 살핌으로써 이재봉시인의 개성적인 시세계를 압축시켜 보고자 한다.

 

 

2. 의식의 이분법

 

이재봉시인이 이끌고 있는 시적 사유의 저변은 ‘의식의 二分法’이다. 그는 삶과 죽음으로 나뉜 인생의 본질 속에서 야누스적 상상력을 키운다. <일상과 환상>, <낮과 밤>, <실상과 허상>, <혼자와 둘>, <하늘과 땅>, <겉과 속>, <모빌과 스테빌>이라는 제목만 보아도 그의 발상법의 이분화가 돋보인다.

 

비 오는 날 카페에서 그대를 만났습니다. 두어 시간을 떠

들고 나니 소리도 아프고 음악도 아팠습니다 원형탁자에

신문을 펼치고 그대와 좋아하는 낱말 찾기를 했습니다

 

완전 ‧ 사랑 ‧ 만남 ‧ 기쁨 ‧ 영원 ‧ 행복 ‧ 이상 ‧ 최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뒷면만을 뒤적이며

빨간 볼펜으로 좋아하는 단어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비는 그치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하늘의 별들이 찻잔에

물너울 칠 때까지 그대와 나는 우리의 눈높이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앞면의 낱말들을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불완전 ‧ 미움 ‧ 이별 ‧ 슬픔 ‧ 순간 ‧ 불행 ‧ 현실 ‧ 최저

-<실상과 허상>전문

 

인생의 보편적 진실은 ‘멀리 떨어진 뒷면’에 있지 않고, ‘눈높이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앞면’에 있음을 부각시킨 이 작품은 인간의식의 허구성을 슬픈 시각에 담고 있다.

 

‘聖스러운 하늘의 말씀’과 ‘性스러운 땅 위의 말들’로 이분된 종교계에 대한 잔잔한 비판의 <하늘과 땅>, ‘낮의 단어들’과 ‘밤의 단어들’이 불협화음을 이루는 <낮과 밤>도 의식의 이분법에 의한 작품이다.

 

우리는 이재봉시인이 작품구성의 골격으로 삼고 있는 이 의식의 양분화가 필연적으로 당도하게 되는 갈등구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는바, 논리적으로 서술하자면 이 현실적인 갈등이 의식의 이분법을 태동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갈등의 시학

 

내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나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내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다

 

분명 내 발인데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일상에서>에서

 

정신분석학은 우리에게 인간의 정신구조가 본능(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로 이뤄지고 있음을 밝혀 주었고, 대부분의 행위가 본능적 욕구에 의해서 이끌리고 있음도 깨우쳤다. 위의 예시에서 ‘또 하나의 나’라고 하는 존재는 무의식의 주인인 본능적 자아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도 바로 그 본능적 자아인 것이다. 본능적 자아의 최초의 활동은 어떤 욕구다.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그리움을 간직하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중략)

개나리 가지마다

노란 꽃망울이 터지면

그리움으로 물든 빛이 되어

그대의 꽃을 피우고 싶다

-<그대에게 가고 싶다>에서

 

그 날 나는 기차가 국경을 지나

로잔으로 가는 동안

그녀의 눈 속에서 타고 있는

저녁 해를

꼭꼭 매어 두고 싶었다

매어 둔 저녁 해 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싶었다

-<불타는 띠쥐베>에서

 

이러한 욕망들은 대개가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 간절해지고, 그래서 저지당한 소망들은 갈등을 낳고, 거기서 의식의 부작용이 유발된다.

 

있는 힘을 다해 뛰었지만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몸이

종이처럼 가벼워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마음껏 밟으며 텅 빈 4차선 도로 위를 질주

했다. 브레이크 페달이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달리는

자동차에 왜 브레이크가 필요하지 그 때마다 또 다른 내

가 내 옆자리에 앉아 브레이크를 밟았다

-<나>에서

 

갈등이나 불안감은 본능적 자아의 욕구를 수용하는 현실적 자아에 대한 초자아의 견제에 의해서 생기는 심리적 현상이다. 욕망의 가속화에 걸리는 초자아의 브레이크는 무의식 속에 욕구불만의 장애물을 남기고, 그 장애물은 육신의 기능장애로 이어져 여러 가지 이상 현상을 초래한다.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

다 그만 바지에 오줌을 쌌다

-<아버지>에서

 

잠 속으로 들어가는 방은 언제나 혼자입니다 입을 한 뼘

벌려도 혀가 보이지 않고 방광이 넘쳐도 오줌이 나오지

않습니다

-<혼자와 둘>에서

 

이재봉시인의 시에 자주 보이는 꿈 소재들과, 결합되지 않는 남녀의 문제, 그리고 위의 예시에서와 같은 기능상실적인 이미지에 초점을 둔다면, 이 시집은 정신분석비평의 훌륭한 자료집이 된다. 이에 대한 부분적 언급은 다음 장에서 시도해 보겠지만, 예시의 ‘오줌’ 문제만 하더라도 방뇨는 ‘소아적 性愛’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정신분석비평의 이론을 원용한다면, 이 시집 속에 나타난 갈등의 이미지들에 해결의 실마리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4. 욕망의 미학

 

앞에서 암시한 바와 같이, 이 시점에서는 의식의 이분화를 초래한 무의식적 갈등이 어떤 기능장애적인 이미지를 양산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성적인 상징성이 주조를 이루고 있음을 간과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지향하는 주제의식은 이와는 달리 문명비판적 인생관에 입각되어 있음을 볼 때, 위의 성적인 상징성들도 현대인들의 정신적 불안, 갈등의 요인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라는 점을 앞세워야 할 것이다. 성적 상징이라는 어휘를 썼지만, 이재봉시인의 이미지들은 서정적 온건성을 보인다.

 

타고 있는 그녀의 눈 속을 바라보다

끝내 나는

그 불 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타는 가슴에

그만 물을 마실 뻔 했다

-<불타는 띠쥐베>에서

 

얼굴이 붉어지면 서로 몸 부딪히며 작은 죽음을 교환합

니다 욕망이 시드는 가운데 뽑혀져 나온 나의 머리카락

몇 개를 손에 쥐고 그 여자가 잠이 듭니다

-<일상과 환상>에서

 

‘불’이나 ‘작은 죽음’으로 대치되는 성적 상징은 별다른 해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었던 머리가 긴 여선생이 지나

갔다 부끄러워 어머니 치마 속으로 몸을 숨겼다 치미 속

은 꽃처럼 아름다웠다

-<어머니>에서

 

여기에서도 치마 속으로 숨는 행위의 당위성이나, 화자의 감정의 대상이 여선생인가 어머니인가에 대한 논급은 필요하지 모르겠지만, 치마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시인의 발상법은 유아적 순진성이 돋보인다. 그러나 ‘오르가슴’이라는 성적 용어로 章名을 삼은 시편들에는 앞에서 인용한 작품들과는 판이한 상징성들에 의한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깊은 밤

은하수가 출렁인다

빅뱅이 뜨거워지면서

팽창

폭발

수축

을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어린별이

제자리 찾아

작은 우주를 돌고 있다

-<생명>전문

 

이 작품은 文面上에서는 우주생성의 과정을 통해 하나의 별이 생명을 얻는 내용을 보여 주고 있지만, 그 상징적 내면에서는 성애의 과정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특히 ‘어린 별’을 정충의 상징으로 풀어본다면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과정으로서의 육체관계가 여실히 조감된다.

 

이재봉시인은 별에 유난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나는 항상 별빛 속에 숨어 있는 무의식의 빛을 의식의 세계에 투사하여 나의 그림자를 찾아본다”라고 말한다. 신화 속에서는 하늘의 모든 별들을 바람둥이 여신 에오스의 자식들로, 그리고 시인들은 ‘영원한 性의 슬픔’(조병화), ’밤의 精蟲‘(안진호)으로 부각시켰고, D.H. 로렌스도 男根을 ’별에 연결시켜 주는 막대기‘라고 비유한 점들을 감안한다면, 이재봉시인의 별도 이러한 포괄성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면봉이

귓구멍으로

들어온다

(중략)

몸이

가벼워지면서

바람을

탔다

-<긴장>에서

 

시커먼 소말리아 병사들이 총을 쏘며 달려왔다 죽고 싶었

다 총에 맞고 하늘에 오르는 시늉을 하며 허공에 떴다

-<꿈>에서

 

위의 예시에는 ‘면봉’, ‘귓구멍’, ‘총’과 같은 성적 대치물들, ‘죽고 싶다’와 같은 성적 욕망, 바람에 뜨거나 하늘에 오르는 것과 같은 성행위의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어휘들로 해서, 정신분석학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그 상징의미의 내용이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능적 욕망 가운데서 가장 강렬하고도 본질적인 것이 성적 욕구고, 인간의 문화, 예술은 이 욕구충동의 승화에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생명의 원동력으로서의 이 욕망이 창작행위에서도 똑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재삼 강조하게 돈다.

 

 

5. 세 개의 죽음

 

이재봉시인이 이번 시집을 총해 보여준 사회적 발언성이 강한 이미지는 죽음을 통해서 부각된다.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적 엄숙함을 거느린다. 더구나 그것이 가족인 경우, 감정의 판도가 달라진다.

 

여섯 시 어머니 전화를 받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빛처럼

달려갔다 아버지가 누워 있었다 얇게 누워 있었다 생각

과 말을 멈추고 산소마스크를 통해서 산 사람의 세상에

누워 있었다 소리쳐도 대답이 없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

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산이 무너

지면서 나무가 쓰러지면서 땅이 갈라졌다

-<스냅>에서

 

죽음은 참 오묘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산이 무너지는’ 아픔을 주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관계에서 오는 반응이다. 그러나 죽음은 반드시 관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모노크롬 화상>이라는 시는 설화적이다. 설화적 요소는 이재봉시인의 한 형식적 특징이기도 하다. 돼지꿈을 꾸고 감자밭에서 발견한 꽃병이 백제자기라고 감정한 이장의 말만 믿고, 주색잡기로 재산을 탕진한 흥철네 아버지, 그 자기가 예사 꽃병이었음을 알게 되자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이야기다. 이 흥철네 아버지의 죽음은 일확천금의 허황스러움에 대한 경고다. 시인의 사명 가운데 하나는 ‘경고하는 것’이라는 W. 오웬의 말이 세삼 의미스럽게 떠오르게 하는 시다.

 

<몽타주>라는 작품은 어쩌다 버스 안에 날아든 새가 열려진 창문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앞 유리창으로만 나가려다가 드디어는 머리가 깨져 죽고 만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말미에는 “어제 오후 삼십년 동안 외길을 걸어온 부천의 한 중소기업 사장이 부도가 나자 자살을 했다”라는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새’의 죽음에서는 도식적 사고의 위험성이 경고되었는데, 거기에 중소기업 사장의 자살이 오버랩되면서, 새의 죽음은 돌연 외길 인생의 비극으로 승화된다.

 

이재봉시인은 <사우스 센트럴>에서 흑인들에게 전재산을 약탈당한 동포의 죽음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잇다. 그는 이 작품의 끝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내 민족은 타다 남은 스웨터 한 장을 어깨에 걸치고 건물

옥상으로 달아나 가난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 갖던 그런 고

향의 별빛 속으로 황급히 올라갔다

 

이재봉시인이 위의 죽음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 것은 죽음 그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인생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성이다. 그러나 그는 시인인 관계로 목청을 높이거나 비극성만을 강조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경고와 제시의 사명에 충실할 뿐이다.

 

나는 이제 이 글을 마감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에게는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남아 있다. 이재봉시인의 원고를 처음 대했을 때 나의 첫 느낌은 바로 이 ‘할 말이 많은’ 시집이라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서 몇 가지만 열거해 보자.

 

이재봉시인은 시각적 이미지에 이끌리고 있다. “뚫린 열쇠 구멍으로 남자의 방을 들여다봅니다”<낮과 밤>와 같이, 그는 인생과 사물의 관찰자로서 시인의 몫을 대신하고 있다. 거기에는 사회에서 격리된 ‘아웃사이더’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또한 그의 시에는 색조의 다체로움이 돋보인다.

 

마블 아치 아래서 회색빛 터키인이 기타를 치고 있다

지나가던 관광객이 가슴을 불쑥 내밀고 동전을 던진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라일락 꽃길을 걸으며 잔디 위에

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은발의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하얀 여자와 회색의 남자가 켄트지 속에서 붕어처럼

입을 맞추고 있다

-<하이드 파크>전문

 

수채화 같은 이러한 색감의 조화로움에서 시각성 시인의 일면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심리학과 미술에 남다른 관심 이상의 깊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외국생활을 통한 여행자로서의 통찰력과 정신적인 여유로 인생을 여과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의 시들이 자기도취의 떠들썩함을 전혀 내보이지 않고 아주 가라앉은 목소리에 담담한 서정으로 일관되고 있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재봉시인의 시가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나의 견해는, 어쩌면 나의 편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시구에서 화제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의 시에서 어쩌면 가장 소중하다 싶은 부분을 놓쳐 버리는 아쉬움을 남기게 될 것이다.

 

셀리, 셀리 제발 그 별꽃으로 이어 만든 밧줄로 나를 묶어

당신의 나라 파랗고 둥근 머언 나라로 나를 데려가 주세요

늘 함께 있어도 외로운 하얗고 네모난 이 가까운 방 오늘밤

나는 그리움으로 숨이 타오릅니다

-<일상과 환상>에서

 

여기서 우리가 화제로 끄집어 낼 수 있는 문제는 ‘파랗고 둥근 머언 나라’와 ‘하얗고 네모난 이 가까운 방’이다. 미술평론가 A. 야페는 ‘원’은 ‘자아개념의 상징, 靈 의 총체,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 완전성’의 상징으로, ‘사각형’은 ‘세속적인 것, 즉 육체와 현실세계’의 상징으로 풀이했다. 이 논리에 따른다면 위의 예시는 ‘네모난 방’, 즉 세속적인 현실에서 ‘둥근 나라’, 즉 정신적인 완전성을 희구하는, 의식의 이분법에 의한 갈등의 시가 된다.

 

이러한 현학적 논거들은 차치하고, 우리는 이재봉시인이 시적으로 더 우수하거나 주체의식에서 더욱 돋보이는 다른 작품들을 제쳐 놓고, 유람선에서 많은 관광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합의 의미를 반추하는 한 쌍의 부부 이야기를 평범하게 펼친 시의 제목을 시집명으로 삼고 있는 사실에 마지막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여기에는 공개적으로 축하받는 사랑의 건전성과, 보편성을 삶의 축으로 삼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첫 시집을 묶으면서 이재봉시인이 <詩作노트>의 마지막에서 토로하고 있는 말은 “좀더 자유스러워지고 싶어서 시를 썼는데, 또 다른 구속이 나를 묶는다”라는 것이다. 그렇다. 시인의 삶은 구속의 여정이다. 그가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구속감은 더 절실할 것이지만, 마침내는 구속 그 자체가 자유가 되리라. 지극히 개성적인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기리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김대규 시인)